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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화폐. 돈이란? 돈의 역사를 알아보자-2

by ros_tabla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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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화폐의 역사에 대하여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전기

조선 적기에는 문물제도를 중앙집권적으로 정비하고 수립하는 과정에서 물품 화폐의 유통 체제를 뛰어넘고 명복화폐제도를 실행하기 위해서 동전이나 저화의 유통을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전이나 저화와 같은 명목화폐를 법화로 하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이에 대한 조치로 당시 유통업계를 지배하고 있던 물품화폐인 베를 법화로 하거나 조선 세조 때 유엽전의 살촉모양으로 만든 철전인 전폐를 법화로 주조하고 유통하려고 하였습니다.

 

조선왕조가 명목화폐제도를 적용하고 실행하기 위해 동전이나 저화를 법화로 유통하려는 이유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먼저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고려왕조가 명목화폐제도를 도입하고 실행하기 위해 화폐유통 정책을 여러 번 시도했던 사실은 명목화폐를 법화로 유통하기 시작한 조선 전기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또, 조선왕조는 명목화폐를 법화로 유통하여 백성의 생활을 안정화하고 국가의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 조선왕조는 화폐의 지배권을 중앙정부나 국왕이 가지기 위해 동전이나 저화를 법화로 유통하려고 했으며, 물품 화폐를 법화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화폐가 발달한 중국의 영향도 명목화폐의 통용을 시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으며, 물품화폐의 기능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명목화폐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요청에 응하기 위해 동전이나 저화를 법화로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들을 살펴본 결과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이유로 조선왕조는 저화를 법화로 하기 위해 화폐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신용 가치가 더 큰 베를 더 선호하고 저화를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저화를 이용하여 민간의 금, 은 등을 사들여 저화를 강화시키고 국가가 보유한 쌀을 풀어 저화를 회수해 저화의 공신력을 보증하려고 하였지만, 일반 백성들은 계속하여 저화를 꺼려하자 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사용하는 자는 엄격하게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는 저화의 사용을 순조롭게 할 수 없었고, 결국 저화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일반 백성들은 베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화의 유통을 잠시 중지하였고 베만 사용하였지만, 베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운반이 불편하고, 낭비인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베를 화폐로 사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거론되어 1410년에 다시 저화를 법화로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1423년에 동전을 법화로 주조하고 유통하는 문제를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전(조선통보)을 저화와 함께 사용하자 저화의 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유통이 더 움츠러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동전 역시 법화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저화를 베와 함께 법화로 규정하였습니다. 

조선 전기에 법화로서 저화를 사용하였던 일은 조선 후기에 화폐 정책의 시행과정과 입안에서 역사적 선례로 참고되고 활용되었습니다.

 

한편, 조선 전기에 정부는 동전 또한 적극적으로 법화로 유통하려고 하였습니다. 동전에 대해 처음 제안된 것은 1394년이었지만, 원료가 부족한 이유 등으로 동전은 주조 및 유통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1415년, 동전의 문제가 다시 나와 법화로 조선통보를 주조하고 유통할 것을 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민심이 동요할 수 도 있다는 우려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23년이 되어서 저화의 부진을 개선하기 위해 동전을 만들어 저화와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1425년, 마침내 저화의 유통이 중단되고 동전만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각종 세금 납부는 동전으로 하고, 동전을 바치지 않는 사람은 처벌하는 등 국가의 권력을 배경으로 하여 동전을 보급하는데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화폐가치에서 실용성을 찾았기 때문에 당시 일반 유통 업계에서는 쌀이나 베 등 물품화폐가 더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일반 백성들이 동전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고 물품화폐만을 사용하자 1426년에 이를 묵인하였습니다.

 

정부가 이러한 동전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울에 있는 모든 관아들이 가지고 있는 쌀, 베 등이나 해산물 등을 시가에 풀고, 정부가 가지고 있는 동전으로 민간의 물품을 구입해 동전의 구매력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동전을 유통하기 위한 화폐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이것에 대한 보완으로 베(즉, 포화)를 법화화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포화는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조선 전기에도 유통 업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외국과의 무역에서도 중요한 결제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쌀과 함께 포화는 조선왕조가 동전이나 저화를 법화로 사용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시기에도 유통 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물품화폐였습니다.

조선 왕조는 포화를 법화로 하려는 정책과 철촉을 법화로 하려는 정책도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 전기의 사회 경제적 발전은 동전이나 저화와 같은 명목화폐를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전폐나 포화와 같은 물품화폐를 받아들일 만큼 서투른 단계이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조선 전기에는 물품화폐의 유통을 극복하고 명목화폐를 유통시키기 위한 정책은 고려시대와 같이 여러 원인들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6세기에 걸쳐 고려왕조와 조선왕조가 시도한 명목화폐의 정책이 실패로 이어졌더라도 이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큽니다. 

 

지금까지 조선 전기의 화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조선 후기의 화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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