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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화폐. 돈이란? 돈의 역사를 알아보자-3

by ros_tabla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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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조선 후기의 화폐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후기

조선 후기는 명목화폐 정책이 확대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국가가 동전을 법화로 채택하고 유통하기 위해 화폐정책을 진행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봉건사회의 관영상 공업체제는 무너졌지만 자유 상업과 사영 수공업의 발전이 급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두 번째, 영리 위주인 상업적 농경이 보급되었고, 토지제도의 혼란으로 인해 특권층의 토지 상품화 또는 토지겸병이 증진되어 특수계층에 의한 대토지경영 및 토지광점의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세 번째, 민간인이 자본을 투자해 경영에 참여하는 민영화 방안이 시도되었는데, 이는 농민층의 부역 노동에 의존한 봉건왕조의 관영광업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임진왜란을 전후로, 사회신분질서에 혼란이 와 이로 인해 전통적 생업관이 바뀌었고, 농업중심의 경제구조를 보완하기 위하여 상공업진흥이 필요하다고 강조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인구가 급증하는 현상으로 인해 봉건 사회의 사회 생사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일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생산 방법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여섯 번째, 상품 및 교환 경제가 발달하는 것을 전제로 한 대동법이 시행되며, 조세체계가 합리화 및 단순화되며 봉건 사회의 유통 경제 및 상품 생산의 발전이 장려되었습니다.

일곱 번째, 일본과 청나라의 교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국내의 상품 경제 및 교육 환경의 발전과 사회 생산력의 증진을 자극하였습니다.

여덟 번째, 중국에서 받은 화폐유통의 자극은 지식 계층이 화폐유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홉 번째, 서양의 과학문명과 청나라의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윤리지향적인 가치체계가 논리지향적인 가치체계로 전환되고 새로운 실학이 학문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세적 가치체계와 생산양식의 변화를 재촉한 일을 겪으며, 교환 경제와 상품 경제의 발전이 급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칭량은화와 물품화폐는 화폐로서의 역할의 한계를 드러내며 동전인 명목화폐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의 재정을 충족시키며, 명목화폐의 유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요구에 응하여 전란으로 파탄된 국가 경제를 재정하기 위해 법화로서 동전을 주조하고 유통하였습니다. 17세기 초부터 1650년 말까지, 주전청이라는 것을 설치하여 동전을 주조하고, 군영 및 중앙관서에서와 각 지방관청에서 동전을 주조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경비를 아끼기 위해 민간인이 주조하는 것을 허가해 주고, 중국동전을 싼 값에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명목화폐를 법화로 사용하려는 정책으로는 화폐유통에 관한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국가가 발행한 화폐 및 주조는 계속 유통될 것이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강조하여 백성들의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또, 동전으로 상품을 거래하고 국가의 수입지출을 화폐화함으로써 백성들의 화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물품화폐와 칭량은화의 사용을 금지하고 동전의 영역을 넓히기도 하였습니다.

1670년 말, 상평통보를 법화로 정하고 유통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화폐경제의 보급 추세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한편, 상평통보를 법화로 사용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를 저해하는 보수적 반동과 화폐를 공급하는 데 부족한 현상과 같은 요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저해 요인으로 명목화폐의 유통을 필요로 하는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1960년 말에는 동전(명목화폐)이 국가의 유일한 법화로 되었습니다. 동전이 교환수단, 가치척도, 저장수단 및 가치수단 등 화폐의 기능을 드러내게 되자 지방관청, 중앙관서, 각 군영의 비축과 수입지출의 화폐비율이 늘어나고, 소작료도 화폐화가 되었습니다. 또한, 고리대자본과 상업자본이 화폐자본으로 바뀌고, 시장의 잡화부터 노비, 가옥, 토지, 가축 등에 이르기까지 동전으로 거래가 되었습니다. 

1720년 이후에는 동전의 유통영역이 넓어져 전국으로 동전이 유통되고 각 계층들의 화폐에 대한 가치 인식이 강화되었습니다. 따라서 1730년대부터는 법화로 상평통보만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되어, 고액전을 주조하고 유통하는 문제와 지식계층에서는 금화 및 은화도 주조하여 동전과 함께 사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1810년, 정약용이 화폐 제도의 개역방학과 근대 금 및 은 본위제를 구상하고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1860년, 심각한 화폐제도와 유통질서에 혼란이 있었지만, 마침내 조선 왕조의 화폐제도, 단일법화유통체제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조선 말기의 화폐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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